2012/02/06 17:48

떡밥 선점! 프랑스 고교 졸업시험문제 과학편 과학이야기

 이렇게 재미있는 주제를 놓칠 수는 없지요! 

 자세한 의견 피력은 차차 하기로 하고, 일단 간단한 개인적 코멘트 정도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질문1-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처음부터 허들이 너무 높네요. 이 문제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설명하는 방법론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지식-전기신호와 화학물질에 의해 제어되는 유기체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이지요.

 과학적인 방법론을 넘어 유기체, 더 나아가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의 관계까지 서술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쫌 가면 과학을 넘어 윤리나 종교까지 다루어야겠네요.

질문2-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먼저 '진리=참'이라는 등식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진리라고 하면 웬지 거창하고, 참이라고 하면 단순해 보이지만 진리=참입니다. 적어도 철학&논리학 시간에서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과학적 참이 참인가에 대한 질문, 더 나아가 과학의 권위에 대한 질문으로 치환할 수 있겠군요.

 이에 대한 논의는 파이어아벤트의 반방법을 접목시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질문3-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여기에서도 먼저 단어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겠네요. 계산이 단순한 산수인지, 수학적 사고인지 애매합니다. 뭔가 논란이 될 만하려면 단순 계산으로 보는게 옳겠지만요. 계산이 단순 산수라고 생각하면 위 문제는 '컴퓨터가 사유할 수 있는가'와 비슷한 질문이 됩니다. 

 인간의 단순한 산수가 사유의 범주에 속한다면 컴퓨터도 사유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반대로 그러한 계산이 사유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확고한 법칙에 의해 돌아가는 모든 논리적 사고 역시 사유하는게 아닐 수 있습니다.

질문4-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이 질문은 의미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먼저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엄청나면서도 명쾌하게 풀리지 않은 선결문제를 남겨 놓고 있고요, 무의식이 도대체 뭘 뜻하는지도 애매합니다. 직관? 비 논리적 사고?  아시는 분이 계시나요?

질문5-오류는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문제 그대로의 의미네요. 다만 '진리=참'임을 다시 한번 상기합시다. 그렇다면 '오류=거짓'으로 치환할 수도 있겠네요. 오류 또한 참이 아니므로 거짓이 맞습니다. 조금 거짓이든 많이 거짓이든 거짓은 거짓임당.

 과학에서는 오류를 잘 설명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이론으로 취급받습니다. 쿤의 과학혁명 이론에서도 오류는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지요. 누적된 오류에 의한 과학혁명, 혹은 오류를 설명하기 위해 이론이 다듬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물어보는 질문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질문6-이론의 가치는 실제적 효용가치에 따라 가늠되는가?

 이론의 효용가치에 대한 질문입니다. 수학자는 효용가치가 없는 분야를 연구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수학과 대학원생에게 직접 들은 바도 있는데, 이 부분은 이학도과 공학도끼리 싸움이 붙어도 재미있겠네요.

질문7-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6번의 질문의 연장선상 같습니다. 한 가지 조심할 부분은, 과학의 용도가 인간 생활을 윤택하게 함에 있다고 하면서 6번에서는 효용 가치가 없어도 소중한 이론이라고 섣불리 내뱉었다가는 멘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문8-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또 다시 용어 문제입니다. 수학적 법칙이 과연 무엇일까...이 세상 모든 문제를 수학으로 치환할 수 있느냐를 물어보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만 자신은 없네요.

질문9-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인간을 규정하는 조건에 대한 질문 같은데, 이쯤 되면 윤리의식 문제라고 봅니다. 아이 로봇에서 소개된 초고도 인공지능이나, 공각기동대에서 소개된 완전한 사이보그 등, 이미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하지만 어려운 문제입니다.

질문10-지식은 종교적인 것이든 비종교적인 것이든 일체의 믿음을 배제하는가?

 어이쿠야... 일단 종교에 대한 정의를 '비 합리적인 맹목적 믿음'이라고 봐야겠네요. 이 문제는 단순히 '신이 있냐 없냐',창조론 등의 문제가 아니라 통일장 이론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 초끈이론이 진실일 것이라는 믿음,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등, 어찌 보면 과학자들의 신념에 관한 질문에 가깝다고 봅니다. 결국 지식이 이러한 신념에 영향을 받느냐 하는 질문이 되겠군요.

 과학 지식이 누적식으로 발전한다는 스티븐 와인버그와, 과학은 패러다임(과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발전한다던 토마스 쿤의 대립이 떠오르는군요. 전자는 일체의 믿음이 배제된다고 믿겠지만 후자는 이에 회의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11-자연을 모델로 삼는 것이 어느 분야에서 가장 적합한가?

 어...인체공학? 이 질문의 의도 역시 파악하기 힘드네요. 간단하게 생각하면 자연을 모델로 삼은 경우가 가장 많은 분야가 어디이며, 왜 그러한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입니다. 아니면 학생의 창의성과 응용력을 보고자 하는 질문일 수도 있겠네요.




 쓰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넘었네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위 내용은 개인적인 의견에 따른 간단한 코멘트입니다. 의문 및 반론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다만 이왕이면 트랙백이나 핑백을 사용한 포스팅으로 부탁드립니다. 하루에 올라오는 과밸 포스팅 양이...



ps. 카테고리 정하기 힘드네요. 과학철학? 논리와사고? 과학이야기? 일단 과학이야기로 ㄱㄱㅅ

덧글

  • 긁적 2012/02/06 17:50 # 답글

    사실, 저 중에 한 문제만 제대로 답해도 당장 세계 최고 수준의 철학자로 명성은 날리게 될 겁니다. (.....)
  • 긁적 2012/02/06 17:51 #

    그리고 보통 저런 어려운 문제들을 시험에 낼 때는 '니가 이 문제 못 푸는 건 나도 아는데, 어떻게 하는 지 한 번 볼래 ~_~'라는 의도를 지니지요.
  • 커티군 2012/02/06 17:55 #

    철학, 어디까지 해봤지? 하는 마인드일듯...
  • 이루쿠쿠 2012/02/06 18:08 # 답글

    문제하나하나가 논술이넴..

    근데 저게 왜 떡밥???
  • 커티군 2012/02/06 19:26 #

    먹음직스럽지 않습니까 +_+ 하지만 잘못 먹으면 콜로세움이 열리겠지요ㅜㅠ
  • 모모 2012/02/06 19:09 # 답글

    '무의식에 대한 과학'이라는 건, 아마 'unconscious mind'에 대한 과학을 얘기하는 걸 겁니다. 신경과학 분야 중에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에 대한 연구 분야 같은 게 있거든요. 근데 여기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의식'이 뭐냐를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 커티군 2012/02/06 19:28 #

    그렇다면 무의식도 모호하고, '과학'이 과학적인 행동인지, 과학적인 결과물을 내는지도 모호하네요. 뭐야 이거 무서워...
  • 모모 2012/02/06 19:33 #

    사실 몇몇 신경생물학자들은 '무의식 같은 건 없다'고 무의식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 커티군 2012/02/06 21:44 #

    엇...그러면 사람이 걸을 때 다리 근육의 움직임을 신경쓰지 않는다 등의 이야기들은 다 어찌된답니까 ㅇㅅㅇ
  • 모모 2012/02/07 13:37 #

    신경쓰지 않지만 그렇다고 알아채지도 못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무의식'이라는 개념보다는 '집중의 부재'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요.
  • 네리아리 2012/02/06 21:13 # 답글

    왠지 이 떡밥 가지고 이야기 나누면 아주 핵폭탄 여럿 맞겠...
  • 커티군 2012/02/06 21:44 #

    디럭스 봄☆바
  • 지뇽뇽 2012/02/06 21:42 # 답글

    아오옹 @_@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붙으면 지구가 멸망할 만한 문제들이네요
  • 커티군 2012/02/06 21:45 #

    손가락이 근질근질하지 않으십니까ㅋ
  • blesshy 2012/02/06 23:20 # 답글

    난 사실 저거 문제 볼 때마다 '단어 정의좀 젭라'라는 생각밖엔 ㅋㅋ
  • 커티군 2012/02/07 00:09 #

    그러게나 말이에요ㅋ
  • 깊은생각 2012/02/06 23:29 # 답글

    우와 이런 수준이 고교 졸업시험 문제라니 뭔가 다르긴 다르군요 :)

    하나같이 혼자 천천히 사색하기엔 정말 좋은 주제들인데, 멍석 깔아놓고 붙으면 피가 튈 것 같네요 ㅋㅋㅋㅋ
  • 커티군 2012/02/07 00:10 #

    혼자하면 수련, 둘이 하면 대련, 셋 이상이면 콜로세움 개장!
  • 2012/02/06 23:3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커티군 2012/02/07 00:11 #

    출처 표기 없이 가져가셔도 문제 없습니다. 저도 문제는 긁어온지라...~_~
  • zz 2012/02/06 23:38 # 삭제 답글

    프랑스식 허세가 엿보이는... 흡사 프랑스 예술영화를 보면서 지적우월감을 느끼라는...
    문제 낸 사람들 조차 정답을 힐끗 보지도 못했을.... 우선 문제에 나온 단어들의 정의부터가 문제라는...
  • 커티군 2012/02/07 00:11 #

    그렇게 우리는 펩시를 마시는...
  • 파군성 2012/02/07 00:55 # 답글

    오류쪽은 정-반-합으로 이루어지는... 누구더라 헤겔이었나 그거로부터 시작해서 비트겐슈타인에 쿤에...
    여하간 프랑스쪽은 못가겠네요. 머리가 뽀개지는 느낌-_-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게 맞긴 한데 저건 과학 전반보단 그냥 과학철학 특화쪽인 느낌인데-_-
  • 커티군 2012/02/07 16:06 #

    과학 지식만을 물어보는 시험이 따로 있나 싶습니다
  • 43535 2012/02/07 12:32 # 삭제 답글

    저런걸 1000자 이상의 논술로 답해야 하느니 수능이 훨씬 쉬운거 같네요
  • 커티군 2012/02/07 16:07 #

    커리큘럼 차이가 상당하니 말이죠 ㅇㅅㅇ
  • 댕돌 2012/02/26 11:41 # 삭제 답글


    잠시 독일쪽에서 머물렀을 때 그 쪽 친구들이 한국 수능은 전국공통으로 하루만에 일제히 치뤄진다는 사실에 놀라더군요. 대한민국은 전국구지만 저동네는 주 관할이라 주마다 다르더라구요. 저쪽 나라는 보통 과목을 선택해서 2-3일에 걸쳐서 수능을 본다니까 한국수능이 놀라울만도.....덕분에 한국은 무척이나 효율을 추구하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남았습니다. 허허;;

    저는 반대로 그쪽 동네는 철학 에세이가 수능시험으로 나온다는거에 놀랐지만요..
  • 사과인간 2012/09/21 07:55 # 삭제 답글

    유럽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유럽의 과학계 고등학교는 철학이 거의 필수이수 과목이라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2-3년간 철학을 배운 학생들입니다. 저런 질문들에서는 100% 학생의 의견보다는 철학자들간의 입장비교 사이에서 자기 의견을 틈틈이 집어넣는 능력을 봅니다. 단어 정의 문제도 그래서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철학에선 어떤 철학자를 택하느냐에 따라 단어의 정의가 달라지니까 그건 학생의 철학적 지식을 평가하는 데 쓰이구요. 시험 문제들은 제 생각엔 과학계 고등학교의 철학 시험인것 같습니다.
    저도 한번은 '우주론'을 정의하라는 질문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 빨간버튼 2012/12/04 22:44 # 답글

    우리나라에서 시행한다면 왜 "줄세우기"에 부적합한 문제를 내느나는 원성이 자자하겠군요ㅠㅠ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