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30 19:17

과학지식의 기술 -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과학사회학

 안녕하세요 커티군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는 과학기술에 두 가지 계통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자연을 관찰하여 있는 그대로 기술한 과학지식과, 이를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에 관한 과학지식에 관한 이야기였죠. 분류 기준에 관한 과학지식은 기준이 바뀜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 과학지식이 과연 변화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질문이었죠.

 자연을 있는 그대로 기술했다면 타인이 그 기술을 읽고 그 원본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말 전달하기 게임과 비슷하죠. 조금 더 분석적으로 들어간다면, 언어와 그 언어가 가르키는 대상이 1:1로 대응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지식의 기술

 과학철학자와 과학사회학자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 과학지식 또한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자연을 100% 있는 그대로 기술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과학철학자들과 과학사회학자들의 핀트는 조금씩 다릅니다. 쿤과 같은 과학철학자들은 자연의 관찰 또한 패러다임(관점)에 지배당하기 때문에 패러다임이 변하면 관찰에 기반한 지식 또한 변화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과학사회학자들 또한 이 의견에 상당부분 동의하면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과학사회학자들은 자연을 관찰할 때에도 그 관점이 패러다임에 지배당하기도 하지만, 패러다임에 지배당한 그 관찰 또한 자연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하기 때문이지요.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하는 예시부터 시작해보죠. 


 말로써 이 물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정도 물체는 정육면체라는 언어로써 쉽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사진은 어떨까요.





 이 사진을 말이나 글로 기술해서 다른사람이 이 사진 그대로를 연상할 수 있을까요? 비슷한 이미지를 전달할 수는 있겠지만 정확한 모습을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구름의 명암, 색감, 아래 도시의 모습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위 사진은 애시당초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형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형상은 어떨까요?






 위 형상조차 끽해야 '아메바같은', '파편같은', '뭐뭐 같은' 등의 수식어로밖에 표현하지 못하죠. 그리고 이러한 표현 또한 이미 존재하는 언어를 사용해야합니다. 아니면 컴퓨터처럼 시작점을 잡고 50도 방향으로 몇 cm, 그 다음은 몇 도 방향으로 몇 cm 식으로 위 형상을 전달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정육면체같은 전형적인 형상은 이와 1:1로 대응하는 단어가 존재하지만, 위와 같은 비전형적인 형상은 이와 1:1로 대응하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기존에 존재하는 단어, 즉 기존 언어의 테두리 안에서 대용품을 찾게 되지요.

 그리고 대용품을 찾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정보는 누락되고 왜곡됩니다. 대용품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물체의 본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단어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언어와 사물이 1:1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언어와 언어가 지칭하는 대상 사이에는 괴리가 생깁니다. 결국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보다는, 자연을 관찰하여 인간의 언어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러나 직접 관찰을 한 관찰자는 자신이 관찰한 대상의 모습을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합니다. 마치 위의 구름 그림을 본 사람은 자신이 이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와 관계 없이 구름 사진의 원본을 기억하고 있는 것 처럼 말이지요. 따라서 자신이 본 구름 사진을 타인에게 전달해 주고 싶을 때에는 언어로 전달하는 것 보다는 원본을 보여주는게 가장 확실합니다. 이렇듯, 언어로써 전달되지 못하고 원본을, 대상을 직접 보거나 경험해야지만 이해하는 종류의 지식을 암묵지(tacit knowledge)라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패러다임에 의한 왜곡 또한 인간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힘들게 만습니다. 첫 번째 예시로 제시했던 정육면체의 경우에도, 선의 굵기와 색깔, 면의 색깔 등의 정보는 누락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정보를 무시하죠. 이러한 정보를 모두 포함하면서도 간결한 단어를 창조하기에는, 우리가 마주치는 존재들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우리가 취사선택한 정보)만을 뽑아냅니다.

 이러한 정보의 취사선택 기준이 바로 패러다임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그 분류 기준을 패러다임이 정해주기 때문이죠. 천체의 움직임을 알기 위해서 천체의 질량을 알아야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그 예시가 됩니다. 고대 천문학자들은 자신들의 분류 기준에 따라 천체의 질량을 필요 없는 정보로 취급했고, 현대의 천문학자들은 필수 정보로 취급합니다. 인간마다 자신과 맞는 금속이나 보석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실험을 할 때 사용한 도구의 재질도 하나하나 기록해야 하겠지요.



 이렇듯 언어 자체의 불완전성과 패러다임에 의한 정보의 취사선택 때문에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인간에게 필요한 정보는 어느정도 정확하게 취득할 수 있으니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닌듯 싶기도 합니다.


ps. 과학사회학 포스팅이 갈수록 과학철학과 겹치는 부분이 생기는군요. 그래도 강의 내용이 과학사회학이었으므로 이전과 동일하게 과학사회학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인문사회 밸리로 발행합니다.

덧글

  • 역설 2012/08/31 02:03 # 답글

    맨 처음 그림이 미리보기에 뜨는 것만 보고는 입체 인식 이야기가 나올 줄... 헛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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